비슷역사, 천문학을 이용하다

>

​​1980년대 이다승국의 《한단고기桓檀古記》a가 출판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두면서 대동소이역사학은 광범위한 대중적 영향력을 확보하게 되었다. 이와 별개로 역사학계에서는 《환단고기》 류의 책이 위서이다이 명백하며, 사료로서의 가치가 전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였다. 그러던 중 1993년 한 편의 논문이 발표되며 커다란 파문이 일었다. 사고의 논문은 서울대학교 천문학과에 재직 중이던 박창범 교수가 쓴 〈단군조선시대 천문현상기록의 과학적 검증〉1이었다. 스토리인즉 슈퍼컴퓨터를 이용해 《단기고사》와 《환단고기》, 《단군세기》에 실린 천문 현상 기록들을 검증해보았더니, 놀랍게도 실제로 일어난 현상으로 증명되었다는 것이었다. 대동소이역사가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

​유사역사가들은 그간 역사학계로부터 비과학적·비합리적 주장을 하는 쇼비니스트chauvinist라는 비판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역사학의 ‘과학성’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스토리­ 당신로 ‘정말 과학’인 천문학을 통해, 게다가 무려 ‘슈퍼컴퓨터’의 계산을 통해 과인들의 주장이 증명되었다니 의기양양해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반면 역사학자들은 당혹감에 빠졌다. 《환단고기》를 위서로 표결한 역사학의 검증 노하우이 틀렸다고는 여겨지지 않았으과인, 그렇다고 낯선 분야인 천문학에서의 검증 이이야기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직접 반박하는 것은 부담스러운 귀취이었다. 역사학계의 침묵 속에서 서울대학교 천문학과 교수에 의해 《환단고기》의 정말성이 과학적으로 증명되었다는 주장은 유사역사가들의 적극적인 선전에 힘입어 일반인 사이에 널리 퍼져 과인갔다.​

>

​박창범이 실제성을 증명하였다고 하는 단군조선 시기의 천문 기록은 ‘오성취루五星聚婁’ 현상이다. ‘오성’은 육안으로 관측 가능한 수성·금성··목성·토성을 의의할것입니다. 이 다섯 개의 행성이 동양의 28수 별자리 중 첫인 ‘루성婁星’ 자리에 모인 것을 오성취루라고 할것입니다. 해당 기록은 《환단고기》와 《단기고사》에 모드 실려 있다.​​

(단군 홀달) 50년에 오성五星이 누성屢星에 모였다.2 무진 50년(단군 홀달 50년) 오성이 루성에 모이고누런 학이 뜰의 소자신무에 와 쉬었다戊辰五十年 五星聚婁 黃鶴來捿苑松.3​

>

​박창범에 따르면, 위서에서 오성취루가 발생했습­니다고 하는 홀달 50년 (B.C. 1733)과 1년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B.C. 1734년에 실제로 오성 결집 현상이 발생했으며, 그 결집도는 오성 간의 평균 각거리가 10.26도에 이를 정도로 몹시­매우 강한 수준이었다고 한다. 다만 오성이 모인 장소는 루성이 아니라 그와 130도 가량 떨어진 ‘장성張星’이었다.​130도라면 거의­ 반대쪽 밝은하항상이라고 할 수 있으므로, 오성 결집의 발생 위치는 기록과 크게 차이가 난다. 그래서 엄밀히 따져 ‘오성취루’가 실현됬다고는 볼 수 없다. 하지만 박창범은 사서의 기록과 불과 1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해에 실제로 오성 결집 현상 이 일어났다는 점과 그 결집이 B.C. 1733년을 기점으로 전후 550년 간 두 번밖에 보이지 않은 강한 것이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더나아가 이를 바탕으로 이 기록이 후대에 입니다의로 날조되었을 확률은 1,000분의 7에 불과하다는 구체적인 수치까지 제시하였다.b 이는 대중들에게 《환단고기》가 위조되었을 가능성­이 0.7%에 불과하다는 강렬한 이미지를 심어주었다.​하지만 이 수치는 편향된 계산의 결과물이었다 박창범은 B.C. 1734년에 발생한 오성 결집의 평균 각거리가 10.26도라는 점을 이유로 이 결집도에 미달하는 다른 오성 결집 현상들은 모드 확률 계산에서 제외시켜버렸다. 하지만 박창범이 설정한 10.26도 이하라는 수치는 몹시­매우 자의적이었다 평균 각거리가 몇 도 이하가 되어야 오성취五星聚 현상이 실현됬다고 인정할 수 있는지에 대한 기준은 애기초에 존재하지 않는다.​의외로 오성 결집 현상 자체는 꽤 빈번하게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그 주기는 대략 20년 정도로 추정된다. 오성 결집 현상의 핵심은 목성과 토성의 만나다인데, 그것은 공전주기상 이 두 행성이 19.9년에 한 번씩 교차하기 때문이었다 목성과 토성은 몇 년에 걸쳐 가까워졌다가 교차되며 다시 멀어지게 되는데, 이때 주기가 상대적으로 빠른 나머지 세 행성인 수성, 금성, 화성이 목성과 토성 부근에 배열되면 오성 결집 현상이 발생한다.c 20년을 주기로 오성이 결집하는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은 박창범의 논문에 실려 있는 그래프를 통해서도 확인이 된다.오성 결집이 약 20년 주기로 발생활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기록과 실제 오성 결집 현상이 1년 차이로 발생한 것에 확률적으로 큰 뜻를 부여할 수는 없다. 연표상에 아무 연도를 무작위로 찍더라도 그것이 실제 오성 결집이 발생한 해와 1년의 오차 범위 내에 위치할 확률은 1/6~1/7에 이르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박창범이 검증 대상으로 삼았던 《단기고사》는 이후과 같은 천문 지식이 버젓이 실려 있는 책이었다​​

>

감성관 황포덕이 임금께 아뢰기를 ‘제가 천문을 관측한 지 50년이 되므로천체의 대강을 추측하였습니다. 천체 중에 제일 큰 것은 북극성 같은 항성입니다. 그이후은 태양의 종류이며, 이후은 수성· 금성·지구성地球星·화성·목성·토성·천명성天明星·해명은성海明 隱星·명성明星 같은 행성이 있어 태양을 중추로 삼아 회전하니,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도이쪽 태양계의 하본인인 행성입니다……4.’

>

이에 따르면 우리 조상은 단군조선 시대에 이미 지동설을 알고 있었고, 태양계를 구성하는 모드 행성들까지 확실히 파악하고 있었던 셈이 된다. 물론 믿을 수 없는 스토리다. 명왕성이 1930년에 발견됐다는 점을 상기하면 《단기고사》는 최소한도 1930년 이후에 만들어진 위서이다이 확실하다. 이곳에 역사학자들이 《단기고사》의 위작 연대를 1940년대로 추정하고 있소리을 감안하면, 혹 그 가까운 시기에 오성 결집 현상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봄직하다.​

>

천문 관측 프로그램을 통해 검증해 보면 실제로 1940년 3월 5일에 오성 결집 현상이 있었sound이 확인된다. 평균 각거리가 B.C. 1734년의 그것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결집 지점이 루성 부근이라는 것은 매우 주목되는 점이었다 기이 살펴보았듯이 《단기고사》는 단군 시대의 역사를 담고 있다고 주장하면서도 근대의 문물들이 아무렇지 않게 자신열된 책이었다 그렇다면 1940년에 실제로 발생 하였던 천문 현상이 단군조선 시대의 천문 현상으로 둔갑하여 《단기고사》에 실렸고, 이것을 저본으로 1979년에 만들어진 《환단고기》에 재차 기재되었을 찬스이 크다.​박창범의 조사는 요즈음까지도 얼추유사역사가들에게 반복적으로 소환되고 있다. 특히 박석재 전 한국천문조사원 원장은 대중 강연이자신 기고문을 통해 《환단고기》의 오성 결집 기록이 과학적으로 증명됐음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는 대표적인 천문학자다. 명백한 가짜 역사가 과학자의 권위로 도금이 되어 소비되고 있는 것이었다​

References1 《대힌민국상고사학보》 14권 14호, 19932 《단기고사》 전 단군조선 13대 단군 홀달 50년3 《환단고기》 단군세기 13대 단군 홀달 50년4 《단기고사》전 단군조선 제5세 구을 15년​참조a. ‘한단고기’는 임승국이 ‘환단고기’를 1986년 번역 출간한 책을 가리킨다.b. [B.C. 2000년에서 B.C. 1450년까지 다섯 행성이 B.C. 1734의 그것과 같거자신 더 결집한 횟수]×[기록 연도와 1년의 오차] / [550년]. 고로 2×2/550=0.007이 었다.c. 다섯 행성의 공전 주기는 다sound과 같다. 수성: 약 88일, 금성: 약 225일, 화성: 약 687일, 목성: 약 11.9년, 토성: 약 29.5년​글 기경량서울대학교 국사학과에서 고구려사 전공으로 학위를 받고 현재 가톨릭대학교 인문학부 국사학전공 조교수로 재직 중이 었다. 대힌민국 고대의 도성이자신 교통로 등 시간과 공간을 접목한 역사 연구를 하고 있다. 대힌민국의 대동소이역사학을 비판하는 ‘젊은역사학자모 임’의 일원으로 《대힌민국 고대사와 사이비 역사학》(공저)에 참여햇읍니다. 대표 논저로〈대힌민국 고대사에서 왕도(王都)와 도성(都城)의 개념〉, 〈평양 지상 고구려 왕릉의 위치와 피장자〉, 〈고구려 평양 장안성의 외성 내 격자형 구획과 형태에 대한 신실험〉 등이 있다.

※ 이 글은 스켑틱 15호 ‘유사역사학이 과학을 만났을 때’의 일부를 발췌한 글임.▼스켑틱 15호 보러가기https://goo.gl/nKi31L